전쟁은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환경도 도탄에 빠뜨립니다. 폭격 현장에서 피어오르는 독성 연기가 대기를 오염시키고, 토양과 하천이 황폐화됩니다.

이번엔 홍해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홍해 수중 생태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홍해는 희귀 산호초가 무리지어 서식하는 바다입니다. 홍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알게 됐는데요. 전쟁은 어떻게 환경을 망치고 있을까요. 최혜린 기자가 정리한 3분 분량의 기사로 알아봅니다.

세계질서를 혼란에 빠뜨린 국제전쟁이 환경에도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는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홍해를 건너다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벨리즈 국적의 영국 소유 선박인 루비마르호에서 기름이 유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이유 없는 무모한 공격으로 선박이 심하게 손상됐고, 18마일(약 29㎞) 길이의 기름띠가 형성됐다"면서 "루비마르호는 공격받을 당시 4만1000t이 넘는 화학비료를 운송 중이었는데, 이것은 홍해로 유출될 수 있으며 환경재앙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홍해를 지나는 민간 소유의 선박들을 공격해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사건은 후티 반군이 선박 공격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심각한 사건이 될 수 있다"면서 선박 일부에 계속 물이 차올라 기관실도 침수됐다고 보도했다.

예멘 정부는 이번 침몰로 인한 생태학적 재앙을 막기 위해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정부는 해양보호 관련 기구를 포함한 국제사회에도 위기 해결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화학비료가 바다에 쏟아질 경우 이미 위기 속에 놓인 홍해의 해양 생태계가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이 환경을 착취한다는 경고가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전쟁 중에는 물론 회복 과정에서도 막대한 양의 탄소가 배출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영국 랭커스터대 연구진은 지난달 발표한 논문에서 "가자지구에서 첫 두 달간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가장 기후위기에 취약한 20개국의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하마스의 공격 이후 60일간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28만1315t으로 추산했으며, 이는 석탄 15만t을 태울 때 발생하는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전쟁을 멈춰도 환경 파괴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에 따르면 전쟁으로 파괴된 10만여개의 건물을 재건하는 데 드는 탄소 배출은 최소 3천만t에 달할 것이며, 이는 뉴질랜드의 연간 CO₂ 배출량과 비슷한 배출량이다.

연구의 공동저자인 벤자민 네이마크는 "이번 연구는 스냅샷일 뿐"이라면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와 독성 오염 물질이 배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년 넘게 이어져 온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다르지 않다. 국제환경단체 ‘클라이밋 포커스(Climate Focus)’에 따르면 전면전이 시작된 후 7개월간 1억t 이상의 온실가스가 배출됐으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산업화가 진행된 네덜란드가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문제도 있다. 본래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녹색 심장'으로 불릴 정도로 풍부한 삼림과 습지에 다양한 생태종을 품고 있었다. 올렉산드르 크라스놀루츠키이 우크라이나 환경부 차관은 러시아군이 자연보호구역 중 3분의 1 이상에 침투했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 비영리단체 갈등환경관측소 책임자인 더그 위어도 "환경은 전쟁의 소리 없는 희생자"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경각심은 커졌지만, 전쟁이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압력으로 세계 각국의 군사 분야 온실 배출량은 투명성이 매우 낮다.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 관련 데이터를 제출하는 나라는 4개국에 불과하다.

이에 지난달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두 전쟁에 따른 환경적 재앙과 기후위기 등이 의제에 올랐지만, 군수 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발표되지는 않았다.

홍해는 희귀 산호초가 무리지어 사는 바다로 유명합니다. 바다거북·듀공 같은 멸종위기 해양생물도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바다에 수만t의 비료가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비료의 질산 성분으로 영양을 과잉 공급받은 바다 조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폭증한 바다 조류는 다른 해양생물이 써야 할 수중 산소를 다 써버려요. 해양 생태계가 산소 부족으로 질식하게 됩니다. 홍해는 해류가 원형으로 순환하는 특성이 있어서 오염된 바닷물이 희석되기도 어렵다고 해요. 아름다운 희귀 산호초와 해양생물들은 자취를 감추고, 홍해는 죽음의 바다가 되겠죠.

역사적으로도 전쟁이 환경을 무참하게 망가뜨린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정글에 8000만ℓ나 살포했어요. 숲과 동물이 무수히 죽었고, 15만명의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걸프 전쟁에서는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석유 시설에 불을 질러서 이산화황이 포함된 연기가 한 달 넘게 대기를 떠다녔고, 페르시아만 바다에 500만 배럴 넘는 원유가 쏟아지는 최악의 환경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에코사이드(ecocide), 즉 '생태 학살'의 사례들입니다.

전쟁의 참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집계한 사례가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지난해 2월 기준으로 환경파괴 피해 규모가 6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어요. 특히 2022년 6월 러시아가 카호우카 댐을 파괴한 여파가 커요. 새들의 둥지가 대부분 휩쓸렸고, 동·식물 수백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수지에 가둬둔 물이 흘러넘치면서 바닥이 드러났고, 풍부했던 수중 생물이 일거에 죽어 부패하고 있습니다. 숲·강·바다와 동·식물들이 비명을 지를 수 있다면 온 지구가 내내 시끄럽지 않았을까요?

탄소 배출도 문제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군대를 유지하는 데만도 막대한 탄소가 배출됩니다. 미국군과 영국군이 2015년 이후 최소 4억3000만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는 집계가 있어요. 영국에서 2022년 배출된 온실가스 총량보다 많은 양이에요. 양국 군대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144조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늦으나마 생태 학살을 범죄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프랑스가 2021년 유럽연합(EU)에서 처음으로 에코사이드를 범죄화했고, 우크라이나·베트남 등도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네덜란드·스페인·멕시코·브라질 등이 이 흐름에 동참했고요. EU는 지난달 에코사이드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기로 했어요.

전쟁으로 할퀴어진 환경의 면면을 보노라면 무력감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국의 바다와 숲은 우리에게서 너무나 멀고,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아예 모르고 무관심한 것과 알고 걱정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쟁으로 신음하는 환경을 독자님들과 함께 알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레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