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당할까봐 무서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저는 전셋집에 살고 있어요. 계약 만기를 앞두고 이사할 전셋집을 구하고 있고요. 하루에 한 번씩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사실은 두 번씩, 세 번씩, 열 번씩 생각합니다. 무서워요.
“꼼꼼히 잘 알아봐야 사기를 안 당한다던데, 뭘 봐야 해요?” 서울 화곡동부터 인천 미추홀구까지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문제를 집중 취재하고 있는 심윤지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두 눈 부릅뜨고 알아봐도 소용없어요.” 돌아온 답변은 서늘합니다.
"알아볼 수 있는 건 집에 대한 것뿐이니까요. 문제는 집주인이죠. 집주인의 체납, 신용 대출, 소유한 다른 집에 대한 근저당 같은 경제적 상황까지 확인할 순 없잖아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만나며 생각한 건, 그분들이 엄청 똑똑하다는 거였어요. 똑똑한 임차인이 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구조적 문제니까요.”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가는데 정부의 지원책은 미흡하기만 합니다. 지난달 28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달 전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대책은 어째서 A씨의 절망에 가닿지 못한 걸까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어요. 기사는 약 3분 분량입니다. |
|
|
☑️ 최근 발표된 전세사기 대책은 피해자 다수를 실질적으로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
☑️ 정부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저리 대출'을 향후 출시하겠다고 했지만 시중은행엔 따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재 피해자들은 대출 연장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 숨진 전세사기 피해자 A씨도 집주인의 연락두절로 대출 연장을 받지 못했다.
☑️ 피해자의 보증금보다 집주인의 선순위 근저당이나 체납 세금이 더 클 때, 단 한 푼의 보증금도 회수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
|
|
전세사기 피해자는 왜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나
2023.03.07. 심윤지 기자
|
|
|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한 빌라 밀집지역. 강윤중 기자 |
|
|
지난 6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인근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A씨의 추모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가족과 왕래가 끊겨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A씨를 위해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길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헌화하고 촛불을 들며 고인의 마지막을 기렸다.
추모식 한쪽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강성호씨(45)는 “부고를 듣고 너무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들도 매일 더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방에서 혼자 얼마나 외롭고 슬펐겠나”라며 “대책위가 희망이었는데 그 희망마저 무너졌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씨는 A씨 생전에 대책위 활동을 함께 했다. A씨가 지난달 28일 남긴 유서에는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달 2일 정부 차원의 ‘전세사기 피해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됐지만 피해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턱없이 낮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미가입자들이 보증금을 일부라도 회수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경매가 유일하다. 하지만 임대인 체납 세금이나 근저당으로 인해 경매 자체가 열리지 못하거나, 열려도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정부 “저리 대출 대환” 약속해도… 시중은행에선 “연장 불가”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대책은 예방에는 일부 효과가 있으나 이미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위한 구제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원책은 사실상 ‘저리긴급대출’과 ‘긴급주거’ 밖에 없다.
문제는 저리대출에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세사기 세입자들이 이사를 갈 경우 저리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임차인들은 전세계약 만료 이후에도 ‘대항력 유지’를 위해 기존 집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월 정부는 기존 주택에 거주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저리대출이 가능한 상품을 5월 중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리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은행으로부터 기존 전세대출을 먼저 연장받아야 하는데, 전세계약이 만료된 상태라면 대출연장을 받을 수 없다. 세입자는 전세계약 갱신을 해야 하지만 집주인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을 경우는 계약 갱신이 불가능하다.
숨진 A씨도 최근 시중은행에 대출 연장을 문의했으나, 집주인이 연락두절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건축업자 남모씨(62)는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50~60명에 달하는 나머지 바지임대인들은 대부분 잠적했다.
A씨는 국회 토론회,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를 찾아다니며 대책을 문의했으나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A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며 “형사고소, 민사소송, 경매 절차를 밟으며 대책위 활동까지 하느라 제대로 된 구직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긴급 저리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시중 은행마다, 담당자마다 안내가 제각각이다.
피해임차인 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이철빈씨(30)는 “계약일이 남아 임차권등기를 설정할 수 없는데, 피해자들에게 임차권등기 서류를 요구하는 등 은행의 모순적인 요구가 반복되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대출 연장이 거부돼 원금과 이자부담을 떠안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피해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
|
|
지난 6일 밤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A씨 추모제에서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글. 박준철 기자 |
|
|
전세사기 피해자들 중에서는 거주하는 집의 선순위 근저당이나 체납 세금이 보증금보다 큰 경우가 많다. ‘최후의 수단’인 경매로도 보증금의 일부조차 회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추홀구의 경우 남씨가 주택 약 2700채를 짓는 동안 받은 선순위 근저당이 문제가 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소액 임차인에 한해 전세 보증금의 일부를 최우선 변제해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A씨는 불과 500만원 차이로 최우선 변제권을 받지 못했다. A씨는 2021년 보증금 7000만원에 임차계약을 맺었다. 주택에 근저당권이 설정된건 2011년인데, 당시 인천지역 소액임차인 기준이 전세보증금 65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1월 기준 전체 피해 가구(3107가구) 중 27.5%가 최우선 변제권이 없다. 피해가구의 60%(2020가구)는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이다. 임차인들은 경매에 참여해 소유권이라도 회수하려 하지만, 입찰 경험이 많은 ‘꾼’에 밀려 낙찰받지 못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가 개인의 무지가 아닌 구조적 실패이자, 사회적 재난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상미 미추홀구 피해대책위원장은 “‘애초에 왜 근저당 있는 집에 들어가냐’고 하지만 근저당과 보증금을 합쳐도 시세보다 낮으니 안전하다는 것이 부동산 중개업소의 설명이었다”면서 “하지만 중개업소와 임대인·감정평가사까지 모두 한 패였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을 받아 집을 구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임차인과 임대인이 알 수 있는 정보가 불균형한 현재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
|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정부 지원책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자들이 떼먹힌 보증금에 대한 회수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되묻습니다. 개인이 사기 피해를 본 것까지 국가가 일일이 보상해줘야 하냐고요. 사실 저 역시도 심 기자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런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관문만 빼고 다 은행 거야’라는 오래된 농담부터 신조어 ‘영끌’까지, 큰 빚을 지고 집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잖아요. 심지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집을 사고 전세 세입자를 들일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졌고요.”
심 기자는 전세사기가 “구조적 실패이자, 사회적 재난”이라고 강조합니다. 지금껏 갭투기를 비롯해 빚으로 집을 사는 위험한 도박이 계속될 수 있었던 건, 이 도박에서 얻을 것이 없는 전세 세입자들이 위험 부담을 대신 끌어안은 덕분입니다. 전세사기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었던 위험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된 것에 불과하죠.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상황에 대한 경고만 명확했어도 피해는 최소화되었겠지만, 방관과 방치만이 지속되었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의 말처럼 국가는 엉뚱한 사람들이 투기 위험을 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관했어요. 이제는 국가가 그 방관의 책임을 질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국가는 여전히 피해자를 돕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국토교통부는 이 기사가 나온 뒤 “임대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도 대출 연장이 가능하다”는 설명 자료를 냈는데요. 시시각각 달라지는 피해자들의 복잡한 현실과는 유리된 이야깁니다.
A씨의 경우 집이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황이었고, 집주인과 연락까지 닿지 않자 은행은 대출 연장을 거부했어요.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벼랑, A씨가 마지막까지 서있던 자리입니다.
어쩌면 국가와 사회는 이 벼랑을 그저 이슈로만 소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 기자는 최근 정치권에서 전세사기 관련 토론회가 우후죽순 열리고 있다고 말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장의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이 자리가 논의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둥 한가한 말만 던지고 사라지는 정치인들의 뒷모습을 잊지 못하겠다면서요.
무서워요. 이 폭풍이 지나고 난 뒤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봐, 더 무섭습니다. |
|
|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근절 종합대책’ 내용과 이에 대한 피해자들의 반응이 담겨 있는 기사입니다. 전세사기 예방 측면에선 유의미한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이미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대책은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는 평가가 담겼죠. 아마 기사를 접한 A씨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 빌라왕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깡통전세, 전세사기, 빌라왕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보증금을 신용과 담보 없이 사적 금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전세제도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결국 전세금은 투기의 종잣돈이 되어 다주택자의 부동산 거품 속에 매몰되어 갔다"는 날카로운 문제제기가 담긴 칼럼이에요.
|
|
|
오늘 주제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질문과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
|
📬 "임신중지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임신 중지 당사자라면 정말 답답하고 막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법의 영역으로 나왔지만, 아직도 임신중지를 마치 '불법'처럼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많은 논의를 통해 임신중지에 대해 세밀하고 정교한 정책과 법안들이 나와야 할 것 같네요."
📝 "지난 점선면Lite < 수술비는 '시가'입니다>에 남겨주신 독자님 의견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 임신중지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았다는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의 자리에서 뉴스를 전하는 점선면이 되겠습니다."
📬 "3월 8일 여성의날을 맞이하는 점선면, 감사합니다. 경향신문 <여성이 못 넘는 벽 '28~30세 남성'> 기사의 악성 댓글들은 놀랍지도 않습니다. 더 읽고, 쓰고, 배우고, 주변에 함께 하는 존재들의 손을 꽉 잡고 한 걸음씩 걷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어찌 됐건 우리 살아요! 살아서 끝을 봐요."
📝 "지난 점선면 < '저출산' 280조는 증발한 걸까> '더 보기' 추천 기사에 대해 독자님께서 남겨주신 의견이에요. 저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있다'는 실감 속에서 계속 나아가고 싶습니다.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 |
|
|
오늘 레터를 공유하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서
해당 사이트의 링크를 복사해 전달해주세요. |
|
|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