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뉴스레터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큐레이터 최미랑 기자입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기사를 소개하고 있어요.  

4월 첫 레터입니다. 때 이른 꽃이 곳곳에 만발하고 있는데, 독자님도 어디론가 꽃 구경을 다녀오셨나요?

저는 어젯밤, 쓰레기를 버리러 집 앞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오래된 아파트단지의 고목들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고개를 꺾어 홀린 듯 꽃을 보았습니다. 멀고 이름난 곳으로 나들이 갈 궁리를 하느라 코앞의 나무들은 알아보지 못했구나, 하면서요. 때마침 오가는 사람도 드물어, 펼쳐진 광경에 푹 빠져 오롯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지난달, 도심에 갑자기 나타난 얼룩말 '세로'의 사연이 크게 주목받았지요. 붙잡힌 세로는 동물원으로 돌아갔지만, 세로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 지어지는 중입니다.

짓기의 주체는 당연히 인간이고요. 누군가는 세로의 관점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애쓰고, 또 누군가는 주목받기 위해 세로의 서사에 올라타려고 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한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글을 소개할게요. 세로의 슬픈 탈주극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고민하셨다면 분명 힌트를 얻으실 거예요. 약 3분 분량입니다. 

☑️ 한 정치인이 자신의 행보를 얼룩말 세로의 동물원 탈출에 비유하는 글을 올렸다. 세로의 뒷모습을 인간으로 패러디한 사진도 함께 올렸다. 

☑️ 인간을 동물에 빗대거나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뜻과 통찰을 담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 세로의 탈출 이후 '문제의 해결책'을 찾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세로에 대해 오가는 말들은 얼룩말의 이야기는 지우고, 인간의 이야기만 살아남도록 하고 있다.

한 정치인이 개인 SNS에 자신의 정치 행보를 알리면서 “얼룩말 세로처럼 훨훨 활보하겠다”는 말과 함께 세로의 탈주를 패러디한 이미지를 올렸다. 그 이미지 안에서 세로는 인간처럼 두 발로 서서 어깨를 당당히 편 채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걸 본 순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물론 인간이 동물에 빗대어 스스로를 설명하는 역사는 유구하다. 특히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지혜가 고여 숙성되는 향기로운 술통과도 같은 장르다. 실제로 동물은 인간과 다양한 속성을 공유하므로, 그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우화는 인간이 설정해 온 동물들 간의 위계를 뛰어넘는 동류의식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은 동물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그에게 매우 인간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내가 함께 사는 고양이를 묘사할 때 종종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컨대 “가을이 되면 길에서 지낼 때가 생각나는지 많이 울어요” 같은 식이다. (우리 고양이는 길에서 왔다.) 이 문장에서 대체 얼마만큼이 진실인지 나는 영원히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내가 그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에게도 나라는 존재를 소화하는 그만의 방식이 있지 않겠냐고.

그러므로 나는 모든 의인화된 동물의 이야기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호주의 에코 페미니스트 발 플럼우드 역시 <악어의 눈>에서 의인화란 동물을 재현함에 있어 “인간의 불순함이 침입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례가 제시하거나 방지하는 통찰, 그리고 그 재현에 담긴 도덕적 질이라는 측면에서 논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플럼우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를 비교한다. 전자는 동물의 실존을 지우고 그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중심주의에 기여하지만, 후자는 이를 교란하는 의인화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질적인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먹을 쥔 채 두 발로 걸어가는 세로의 뒷모습은 자못 비장해 보이지만, 세상 우스꽝스러운 비유였다. 세로는 도심을 “훨훨 활보”한 것이 아니었다. “세로의 반항” “세로의 봄소풍” “세로의 슬픈 사연” 등 온갖 통속적인 말로 세로에게 인간적인 서사를 부여해 봐야, 그 어떤 것도 정확하지 않다. 넓디넓은 대초원에서 뜯겨져 나와 좁은 우리에 홀로 갇혀 있다가, 인간의 관리 부실로 아스팔트 위에 고립되어 있었던 비인간 동물. 팍팍하지만 이 문장이 조금은 더 사실에 가까운 묘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 표현 역시 바로잡아야겠다. 세로의 의인화된 이미지를 한국의 정치적 맥락 안에서 전시하는 건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비유”가 아니라 “뻔뻔하고 고통스러운 도둑질”이다. 비단 그 정치인뿐 아니라 세로를 대상화한 수많은 ‘우리’는 얼룩말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훔친 뒤 지워버리고 인간의 이야기만 살아남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 이야기 도둑질이야말로 ‘이국적’인 동물들을 잡아다 창살 뒤에 가두어 돈을 벌고, 즐기며, 연구 대상으로 삼아 지식을 확장해 온 동물원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기본 조건이다. 정치인은 같은 게시물에서 이런 표현도 썼다. “정부와의 싸움에서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통제할 때 사용하는 기구인 ‘고삐’만큼은 이 게시물에 딱 어울리는 비유였다.

세로가 동물원으로 돌아간 후, 문제의 해결책으로 암컷 얼룩말과의 합사, 관리 철저, 동물원 폐쇄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세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며칠째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게 뭐가 되었든 세로의 이야기에 씌워놓은 고삐부터 풀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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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라 그랬다', '외로워서 그랬다', '캥거루에게 맞아서 그랬다' 까지... 

세로의 탈출이 주목을 받자 '후속 보도'랍시고 이런 '분석'들이 난무했습니다. 언뜻 세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태도로 지은 '이야기'들이지요.

세로에게 이런 서사를 부여할 때, 가축화하기 어려운 야생의 동물을 가두어놓고 구경하는 '우리'의 행위가 문제라는 점은 마주하지 않게 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글을 읽고 이 점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어요.

"동물보호, 품종보존으로 명분을 바꿔도 동물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존재를 그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좁은 공간에 가둬 감상하면서 그들도 행복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얼룩말 세로는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했는데요. 전국의 동물원 현황조사 내용을 살펴보니, 울타리를 제대로 갖춘 동물원이 열 곳 중 한 곳도 되지 않았습니다. 동물에게 꼭 필요한 방사장이나 은신처 같은 것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요. 

오늘 소개한 칼럼에서 손희정 평론가가 인용한 책 <악어의 눈> 서평입니다. 생태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한 독특한 경험을 한 이후 원래 가지고 있던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대폭 수정합니다.

📝 "수요일에 보내드린 점선면 <2023년생의 스무살에 지구는> 편에 한 독자님께서 이런 피드백을 보내주셨어요. 기후 문제에 대한 점선면의 진심을 알아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해요! 탄소중립기본계획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면, 강한들 기자가 연재 중인 꼬꼬탄 시리즈도 지켜봐주세요."

📬 "내 아이들이 뜨거운 지구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어요. 회사에서나 외출할 때 손수건과 텀블러를 챙기고 배달음식을 시킬 때는 일회용 수저를 받지 않지만, 이것만으론 안 될 것 같아요.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 "지자매 구독자님께서는 이런 피드백을 보내주셨습니다. 일상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는군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독자님께서는 '지역소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짚어주셨답니다. 아울러 '해외여행도 기차로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든 물자든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탄소가 발생하는데, 같은 거리를 비행기 대신 철로로 이동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훨씬 적다고 해요.

탄소 배출량은 대체로 여객기 >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 중형차 > 고속철도 > 고속버스 순으로 많다는데요. 익명의 독자님 덕분에, 어디론가 떠날 생각에 마음이 울렁이는 계절에 기억할 내용을 다시금 눈여겨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