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이나 서양이나, 읽고 쓰는 게 이들 몫이었다니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큐레이터 최미랑 기자입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기사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어요.
슬슬 한 주를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지금 편집국은 한창 마감 시간이라, 동료들이 모니터에서 눈을 못 떼고 있어요. 다들 내적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게 훤히 보입니다.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요.
독자님의 일상에서 읽기와 쓰기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나요? 기자만큼이나 많이 읽고 쓰시는 독자님도 계실 것 같고, 메일함을 열어 점선면을 보는 게 요즘 읽기 활동의 거의 전부인 독자님도 계시리라 짐작해봅니다.
오늘은 책의 방대한 역사를 다룬 글을 소개할게요. 쓰는 직업은 '펜대를 굴리는' '편한 일'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반비 출판사 신간 <갈대 속의 영원>에 대한 김종목 기사의 서평입니다. 약 6~8분 분량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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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로마에서 읽고 쓰는 일은 노예의 전문 영역이었다.
☑️ 이 시대 권력자들에게 책은 '보물 조각' 같은 존재였다. 권력자들은 힘과 부를 이용해 책을 손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 책에 대한 고대인의 집착과 열정은 현대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정보기술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책은 해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 그러나 책이야말로, 인류가 내놓은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살아남게 해준 결정적 수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으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모두 잊혔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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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펼쳐낸 책의 역사
2023.04.01. 김종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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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 신분의 흑인들이 읽기를 배우는 모습을 묘사한 당시 그림(18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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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부연합이 패배할 때까지 미국의 많은 남부 지역에선 노예가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게 불법이었다. 대농장 소유주들은 철자를 아는 노예를 교수형에 처했다. “노예의 주인들은 문자의 힘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읽기가 몇 개의 단어만으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중)
읽기와 쓰기는 노예의 일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노예들의 처지는 대조적이다. 이들은 복사, 문서화 작업을 했다. 주인들은 읽기와 쓰기를 노예의 전문적 일로 여겼다. ‘노예 우대’나 ‘노예 복지’ 같은 형용모순의 대우가 아니었다. 당시 읽기는 주인을 섬기고 복종하는 일이었다. 작가 이레네 바예호는 “고대의 독서는 오늘날 같은 침묵의 독서가 아니었다…그리스인과 로마인은 글로 된 텍스트가 온전히 완성되려면 살아 있는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 (독서) 노예들은 책을 읽는 순간 자신이기를 멈췄다. 그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나’를 말해야 했다. 그들은 타인의 음악을 위한 악기에 불과했다.” 특히 로마에서 노예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엄청난 수의 그리스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로마에 노예로 팔려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로마 귀족들은 특권적이고 희귀하고 독점적인 책에 열광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에 하인을 보내 사본을 구했다. “곧 그들은 그리스와의 전쟁을 통해 도서관 전체를 탈취하는 게 실용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문학은 전쟁의 전리품이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왕실 도서관을 로마로 옮긴 게 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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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재현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그림(19세기 중반). 출처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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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학 전공자가 써내려간 책의 역사
<갈대 속의 영원>은 바퀴, 의자, 숟가락, 가위, 잔, 망치처럼 “한번 창조된 이후로 그보다 나은 게 등장하지 않은” 책에 관한 역사책이자 에세이다. 저자는 “책 사냥꾼의 모험을 이어가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그리스·로마 시대 고전 문헌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이 시대를 중심으로 책과 도서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즘이야 매해 수백만권의 책이 폐기돼 펄프로 만들어진 뒤 신발 상자, 화장지, 냅킨으로 재활용되지만, 당시에는 “보물 조각” 같은 존재였다. 권력자와 부자들은 그 보물을 얻으려 힘으로 빼앗고, 사기도 쳤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아테네에 보관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정본을 욕심냈다. 사본을 만들겠다고 빌리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 수백만달러에 해당하는 15달란트의 은 보증금은 포기했지만 말이다.
역사 인물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알렉산드로스가 늘 <일리아스>를 품에 안은 채 잠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전리품인 다리우스의 값비싸고 독특한 보물 상자에 넣으라고 한 것도 이 책이다. 티레와 가자 침공 이후 가자의 통치자를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에게 했던 것처럼 수레에 묶어 죽을 때까지 나뒹굴게 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서사시를 살고 있다고 믿으며 흡족해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처럼 전설적인 잔인함과 상징과 몸짓을 모방했다.” 저자는 여러 인물에 관한 단상을 적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강박을 묘사하는 그리스어로 파토스를 꼽으며 “그것은 부재한 것 혹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며 결코 진정되지 않기에 상처를 주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도서관, 세계화 사회의 전초기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금이나 보석이나 향연에는 눈 깜짝하지 않을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한 것 중 하나가 도서관에 비치할 20만권의 책이었다.
이 무대가 “책에 대한 열정적인 광기”를 드러낸 알렉산드리아다. 저자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얽힌 특별한 모험”이다.
세관원들은 글로 쓰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파피루스에 복사했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취한 뒤 도서관 책장에 비치했다. 도서관의 파수꾼들은 사본의 변화 과정에서 원래 메시지가 슬그머니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원본을 재구성할 모든 판본의 책을 사러 다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엄청난 투자를 한 도서관을 문학적 영감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개방했다. 저자는 “그들은 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 세계의 토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곳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 사회의 전초기지였다”고 말한다.
카이사르가 로마 최초의 공공도서관을 건설할 계획을 세운 사실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야기 시간대를 현대까지 연장하고, 주제와 대상을 정보기술(IT)과 예술까지 확대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가 공공도서관의 질서정연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공간에서 웹의 영감을 얻은 사실과 연관해 분석한다. “도서관이 광대하게 증강되어 방사된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부유한 로마인들의 (책) 전유에 대한 열망”을 1940년대 유럽 최상 회화를 미국으로 사들여온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에 빗댄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리학을 그려내려던 열정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선 예술이 개인이나 삶이 아니라 사물에 관련된 것으로 변해 있습니다. 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없는 거죠? 왜 전등이나 집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고 내 삶은 안 되는 겁니까?”라는 고대 사유에 관한 인터뷰 때 미셸 푸코가 한 말도 전한다.
아름다움이 새겨진 책의 수난사
저자는 책에 얽힌 모든 역사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인다. 재산 목록을 점토에 기록하던 글쓰기는 기원전 8세기 “연회에 참여하여 춤추고 마시고 축하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기록하면서 그 순간을 영원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또한 알파벳 덕이었다.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무용가는…”이라는 단순한 문장을 새긴 기원전 750년에서 650년의 항아리에서 “우리는 그리스인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를 상상”할 수 있다.
양피지로 150쪽 책을 만들려면 열 마리에서 열두 마리의 양이 필요했다. 한 서기는 13세기 성경에 재료의 결핍을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하늘이 양피지고 바다가 잉크라면 좋았을 것을.”
책의 수난사도 썼다. 진시황,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기 관리, 스페인 종교재판관, 나치 등의 ‘분서’를 두곤 하이네가 1821년 했던, “책을 태우는 곳, 그곳에서 사람을 태우게 될 것이라”라는 말을 연결한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 대신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레즈비언’이란 제목을 달려고 했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정치적 올바름과 현대의 잣대를 적용하며 서술한다. 알렉산드로스의 과대망상, 잔인함, 희생자들에 대한 냉담함을 두고 분석하는 작가들, 그를 아돌프 히틀러와 비교하는 작가들 견해도 소개한다. 남성의 지배권 옹호 같은 고대 책에 포함된 억압적 이데올로기도 다룬다.
‘강요된 침묵’을 뚫은 ‘이야기의 직조자’들
저자는 여성에 대한 ‘강요된 침묵’ 역사에도 주목한다. 데모크리토스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이자 전복적 사고를 지녔음에도 “여자가 말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자연적 능력은 남녀 모두에게 유사하게 분배되기에 여성은 본질적으로 남성과 동일하게 모든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놓고도, 다른 저작에선 부정한 남자들이 벌을 받아 여성으로 환생한다고 적었다.
침묵을 뚫고 나와 ‘여성의 목소리’를 낸 이가 사포다. “이 검은 땅 위에 기마부대나 보병부대나 선단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기원전 6세기 사포의 표현에서 ‘정신적 혁명’을 찾아낸다. 대다수가 찬미하는 행진과 군대와 권력의 과시를 문제 삼으며 기성의 가치와 마찰하기 때문이다.
여성 철학자 히파르키아가 ‘정신은 말을 엮는 베틀’이라고 생각한 점을 두고 “말의 씨실과 날실의 조합이 텍스트(text의 어원이 직물이란 뜻의 textus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여성은 “고대부터 화톳불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민요를 부르고 시를” 엮고, “밤에 이야기의 기억을 풀어내는 일을” 맡은 ‘이야기의 직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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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저자 이레네 바예호(2015년). 출처 : 위키피디아 (Santiago Basallo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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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덕에 인류의 최고 아이디어가 살아남았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책은 해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수단이란 점도 분명하다. 여성 억압, 노예제 유지, 장애인 차별의 이데올로기가 책으로 이어졌다.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문화에 대한 기록은 동시에 모두 야만에 대한 기록”이라는 발터 베냐민의 말도 인용한다.
저자는 책이 과거에 인류가 건설한 최고의 이야기, 상징, 지식, 발명을 뒷받침한다는 점에 방점을 둔다. 저자는 “인류가 창안한 최고의 아이디어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책 덕분”이라며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시민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결정한 소수의 무모한 그리스인을 잊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에게도 전폭적인 도움을 주라’며 가난한 자와 노예를 동등하게 치료할 것을 약속한 히포크라테스적 의사들도 잊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포의 시에서 욕망이 저항의 한 형태임을 발견하고, 타키투스의 책을 통해 독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며, 세네카의 목소리에서 최초의 평화주의자의 외침을 듣는다. 저자는 인간의 평등, 병자와 약자와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등 ‘우리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의 발명이 책으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모두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40여개국에서 출간됐다. 여러 작가와 매체가 극찬했다. 스페인에서 국립에세이상과 함께 받은 상 이름 하나가 책 주제나 취지와 이어지는 듯하다. 상 이름은 ‘인문학 수호를 위한 시민참여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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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긴 기사를 담아 보내드렸는데요. 독자님께선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현대사회 이전에 문자를 다루는 건 귀족의 일이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은 노예들이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했다는 게 다소 충격적이었어요.
책을 사랑하는 독자님이라면 전해드린 글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셨을 것 같아요. 좋은 책을 통해 접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겪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간접적 경험을 저도 몹시 사랑합니다.
다만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판단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일 같아요. 주말이 다가오면 경향신문을 비롯한 여러 언론사의 서평 기사를 눈여겨봅니다. 보다 보면 '지름신'을 피할 수 없게 돼요.
쌓여가는 책들을 어디로 보낼지, 다음 주인을 어떻게 찾아줄지 늘 고민하지만, 새 책을 탐색하는 즐거움 앞에 자주 굴복하고 맙니다.
좋은 글을 찾아 그 맛을 음미하는, 좋은 주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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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을 그저 찬양할 수는 없는 이유
의외로 조선시대 사정도 그리스·로마 때와 비슷한 데가 있네요. 책을 만들던 장인 상당수가 노비답니다. 양반들이 의뢰한 책 마감을 못 지켜 채찍질을 당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나 봐요. 김현호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의 이 칼럼을 읽고 알게됐습니다. 전통에 대한 잡지를 만드는 그는, 수탈과 착취의 결과물을 그저 경배만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 한국 고등학생 논문 써주는 제3세계 작가들
"고등학생 입시용 논문도 대필 가능한가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메시지를 보내자 2시간 만에 답이 왔습니다. "물론입니다. 당신이 제게 논문 대필을 의뢰한 세 번째 한국인이네요." 6만 3000원에 논문 한 편을 살 수 있었대요. 대필 시장의 '글로벌 생태계'를 직접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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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에 갈까요?
인류가 다시 달에 갑니다. 약 50년 만입니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떠난 이후 미국·소련의 우주 경쟁이 마무리 되면서 인간은 달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거든요.
상황이 달라진 건 ‘아르테미스 계획’ 때문입니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등 23개국이 참여하는 이 계획에 따라 2025년 우주비행사 2명이 달 표면을 다시 밟게 됩니다. 달에 상주 기지를 세워 광물 자원을 채굴하는 게 목표고요.
한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며 우주개발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요.
우리는 왜 우주로 가야 할까요? 지금 달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독자님의 생각을 알려주세요. 다음 주 점선면에 반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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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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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슈와 과거 기사를 함께 묶어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기사 이해도가 높아지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경향신문 화이팅!"
📝 어제 보내드린 점선면 Lite <오염수로 가뭄에 대응하면 된다고?> 편에 대해 한 독자님께서 이런 피드백을 보내주셨어요. 뉴스의 맥락까지 잘 전달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현장을 뛰는 동료들에게도 응원의 말씀을 전할게요!
📬 "세로의 탈출 이유를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많은 것을 안 기분이었어요. 어쩌면 사람도 진실만을 말하지 않으니 누군가가 한 말의 이유도 영원히 모를수도 있겠군요.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싶어집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에든 고삐를 씌우지 않기 위해 바르게 알고 바르게 말하기에 힘쓰고싶어요."
📝 지난 화요일의 점선면 Lite <얼룩말 세로가 눈에 밟힌다면> 편에 대해 구독자 유지 님께서 이런 감상을 보내주셨어요. '세로의 탈출'은 동물권 문제뿐만 아니라 언어, 소통, 이야기 등 인간의 본질과 연결된 참 많은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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