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잠수사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구조' 보도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적 연락망을 가동합니다. 가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너도나도 모입니다.
현장에 가보니 작업은 '구조'가 아니라 이미 '시신 인양'입니다. 잠수사들은 현장 상황이 너무 다급하다며 아는 잠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유족들의 눈빛을 보면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해경들은 자신들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안다면서도 다칠 경우 치료비는 국가에서 다 지원할 테니 들어가 달라고 했다." (배상웅 잠수사의 말)
이들이 이후 10년 간 겪은 일은 국가가 '의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수색 작업 중 고 이광욱 잠수사가 숨지자, 검찰은 엉뚱하게도 민간 잠수사 가운데 선임이던 공우영씨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작업의 지휘 책임은 해양경찰에 있는데도요.
' 무죄'라는 법원의 최종 판결(2017년 1월)때까지 공 잠수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벗으려 애써야 했습니다.
2016년 6월 17일에는 세월호 진상 규명에 앞장선 고 김관홍 잠수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잠수병을 얻어 생계가 곤란해져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던 중이었어요.
잠수사들은 작업 현장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병을 평생 가져가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은 불충분했어요. 어렵게 지원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턱은 높았고, 시간이 지나며 되레 높아지기도 했어요.
한재명 잠수사가 앓던 골괴사는 세월호 작업 참여 잠수사들에게서 흔한 중병입니다. 고압 환경에서 오래 일하다 뼈에 피가 안 통해 생기는 질환이에요.
한재명 잠수사의 지난 3월 인터뷰를 보면, 2023년 3월부터 정부의 치료비 지원이 끊겼다고 합니다.
올해 4월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면, 다른 잠수사들도 제대로 지원을 못 받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세월호는 산업 현장이 아니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인정이 불가하다"고 했답니다.
그럼에도 잠수사들은 세월호 작업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라고요.
이제는 물어볼 수 없게 됐지만, 한재명 잠수사도 같은 답을 하지 않았을까요. 참사 이후 그는 차에 항상 수상구조 장비를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태원 참사 후에는 심장 제세동기까지 구매했대요.
이제라도 정부가 사람을 구하다 몸과 마음을 다친 잠수사들을 제대로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고 한재명 잠수사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