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때문에 운동을 줄인 건 건우만의 일은 아닙니다. 학교도 더운 날씨 탓에 운동장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30)는 "학교 차원에서 나가지 말라고 못을 박는다"며 "7월에는 모든 반이 점심시간에도 체육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게 하려고 교실 의자에 앉아서 하는 피구인 '교실 피구'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 지모씨(26)도 "작년 여름에는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짝피구도 했는데 올해는 나간 적이 거의 없다. 항상 '교실체육'을 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운동은 아이들의 신체 발달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필수적입니다. 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운동은 공부 때문에 생기는 불안과 우울한 감정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면역력을 길러 감염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활동량이 줄면 어린이의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수 있는 것이죠.
한국 아이들은 원래도 신체 활동량이 적은 편입니다. 보건복지부의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를 보면, 숨이 약간 차는 정도의 '중등도 운동'을 한 주에 30분도 하지 않았다고 답한 아동은 48.9%에 달했어요. 만 5~17세 아동·청소년에게 하루 60분 이상 중·고강도 운동을 권고하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훨씬 못 미치죠. 폭염 영향까지 더해지면 아이들의 운동 시간은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아이들의 운동 기회조차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센터장 성씨는 "폭염을 피해 다른 실내 공간으로 가려 해도 비용 부담이 크다"며 "돈만 많으면 걱정 없이 종일 키즈카페에 가 있거나 할 텐데, 토요일 운영 보조금이 없어져서 사업비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어요. 교사 이씨도 "실내체육관이나 놀이체육실이 없는 학교도 많은데 그런 곳은 폭염에 대책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동권리보호 NGO(비정부기구) 굿네이버스의 고완석 아동권리옹호부장은 "점프 학원이나 줄넘기 학원 등 체육 활동도 사교육화되는 추세인데,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 아동은 신체활동을 불가피하게 포기할 수 있다"며 "아이들이 야외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면 휴대전화 게임이나 TV 시청 등 정적인 활동 위주로 여가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격차는 아이들의 발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신현숙 경희대 간호학과 교수는 "초등학생은 사회성 발달이 중요한 시기인데,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 자체가 사회성 발달의 기회가 된다"며 "관계를 통한 사회적 자극은 학습 능력을 키우는 것과도 연결된다"고 했어요.
더 길고 뜨거워질 여름, 정부가 아동 건강을 위해 공공 실내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역아동센터장 성씨는 "공공 인프라가 더 늘어나야 한다. 구 강당을 빌려주거나, 청소년 체육시설이 구에 3~4개 정도는 있어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평등한 놀 권리'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뭐니뭐니해도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입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칼럼에서 "극심한 폭염과 빈번한 열대야에서는 아이들의 외부 활동이 줄어 신체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어른이 됐을 때도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기후를 남겨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활기찬 여름을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일,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