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은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책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를 '덕질'하듯 주기적으로 읽는답니다. 판타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도 이 시리즈에는 계속 손이 가요. '한국판 반지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방대한 세계관과 치밀한 상상력,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필력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올해 초에도 문득 떠올라 또 정주행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용한 문장은 <피를 마시는 새>의 주인공 엘시 에더리가 한 지방 귀족의 서류 위조 범죄를 두고 한 말입니다. 8권에 이르는 시리즈 초반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스치듯 지나간 대사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의미가 무겁게 다가왔어요. 최근 언론 업계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현대자동차 기사 삭제·수정 사건'입니다. 2021년 8월 현대자동차 회장 장남이 음주운전 사고를 내 벌금 9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일이 여러 언론에서 보도됐어요. 그런데 4년이 지난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의 요구에 따라 당시 기사를 쓴 많은 언론사가 기사를 삭제·수정했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기사를 썼던 기자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삭제·수정을 했고요.
힘 있는 이들의 잘못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이, 되레 힘 있는 자의 허물을 숨겨 준 겁니다. 사안이 드러나자 언론인들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많은 언론이 사과문을 올렸고 경영진이 물러난 사례도 있습니다. 다행히 경향신문은 기사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앞으로 유사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규정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한 경제지 기자들이 벌인 '선행매매 주가조작' 입니다. 특정 종목 주식을 산 뒤 호재성 기사를 써서 주가를 띄우고, 주식을 되팔아 차익을 남긴 사건입니다. 중립성과 이해충돌 방지 등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를 정면으로 저버린 셈이죠. 이들은 금융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업계의 치부를 다시 꺼내놓는 게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라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더 부끄러운 건, '그럼에도 언론을 믿어달라'는 호소조차 하기 민망해진 요즘의 상황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저조차 제가 몸담은 업계를 믿지 못해서, 달리 말하자면 믿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붓의 무거움을 잊고 저도 모르게 여기저기 먹물을 흩뿌려댄 적은 없었는지 두렵기도 합니다.
두 가닥의 희망을 붙들고는 있습니다. 하나는 언론계에서 두 사건을 두고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양심을 지키며 진실을 파고드는 훌륭한 동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그 희망들을 저 혼자 만지작거리며 안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언론을 믿어달라'고만 외칠 시간에, '믿을 만한 기사'를 독자님들께 더 많이 만들고 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점선면팀에 온 지 1년이 된 지금 다시 다짐해봅니다.
조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