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아침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전문) 때문에 이마를 짚은 독자님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자기합리화, 모순, 사실부정, 괴담으로 가득한 담화를 보고 듣는 일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담화에 담긴 황당한 내용을 일일이 팩트체크하기보다 그 속에 숨은 의도를 짚어 보겠습니다.

극우세력이 주장할 법한 음모론이 대통령의 입을 타고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한국의 내정이므로 논평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껴 온 중국 정부까지 반발했습니다. 

'광란의 칼춤' '국정 마비'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전 위협' '헌정 질서 붕괴'…. 윤 대통령이 야당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수식들은 본인이 자행한 12월 3일의 비상계엄령 발동에 더 어울리는 말들입니다.

윤 대통령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합니다. '국민과 함께'라고 했지만 '국민을 상대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번 주말 서울로 향하는 기차표와 버스표가 매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하는 독자님이 계신다면, 추운 날씨와 체력 소진에 단단히 대비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30분 가까이 이어진 대국민 담화에서 딱 한 차례 사과했습니다.

나머지는 계엄 선포는 법적 절차를 따랐으며 야당 횡포에 대한 '경고용 통치행위'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12월 3일의 계엄 선포를 합리화하며 '내란'이 아니라고 항변했어요.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대국민 담화보다 내란죄 피의자 변론에 가깝단 인상을 줍니다.

황당한 내용이 많지만 가장 경악스러운 부분을 꼽으라면 '부정선거 음모론'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말했습니다. 야당이 압승한 지난 4월 제22대 총선이 부정선거였을 가능성을 제기한 겁니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부정선거론은 선거에 패배한 진영이 결과에 불복하기 위해 꾸며내는 괴담에 가깝습니다. 실제 부정선거가 일어나려면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 조작된 데이터에 맞게 실물 투표지까지 바꿔치기 해야 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선관위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제22대 총선은 북한이 개입한 부정선거였다는 음모론은 극우 유튜버, 극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음모론을 계엄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정유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극우 유튜브에 중독돼, 아무도 믿지 않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최악의 시민'이 대통령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14일 토요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탄핵 촉구 집회에 대규모 인파가 모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주말엔 인터넷과 통신이 끊겼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이번 주엔 통신사들이 이동기지국을 추가 배치하는 등 장비와 인력 규모를 크게 늘리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더라도 방법이 있습니다. 인터넷 없이도 50~100ｍ 안에서 서로 통신할 수 있는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지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도 널리 사용된 '브릿지파이'예요. 앱을 내려받고 초기 설정을 할 때는 인터넷이 필요하니 사전에 받아 미리 지인과 연결해 두시길 추천합니다.

재능기부와 각종 '선결제'도 불이 붙었습니다. 민주노총은 시민들의 이동과 물품 운송을 지원하고, 집회 참여자의 깃발을 제작합니다. 권순영씨는 시위 현장에서 아이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와 함께 쉴 수 있는 '키즈버스'를 마련했습니다. 미리 커피나 음식값을 결제해두고 집회 참여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한 시민들도 있는데요, 이런 '선결제' 식당·카페 리스트를 정리해 둔 지도도 등장했습니다. 비영리단체 '커뮤니티매핑센터'는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만든 '여의도 화장실 지도'를 공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