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 💥 그는 왜 흑인 소년을 쐈나

캔자스시티 총격 사건 뒷이야기

2023.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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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에 빠진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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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5.02. 화요일

안녕하세요, 이번 주 큐레이터 허남설 기자입니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논쟁적인 이야기 담은 뉴스 전해드릴게요.

독자님은 뉴스를 무엇으로 접하시나요? 포털, 카톡, SNS, 유튜브, 방송, 뉴스레터(점선면?😎) 등등 너무 다양해서 아마 모든 독자님의 답이 저마다 다 다를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접하는 뉴스는 독자님께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전하나요? 유용한 지식과 정서적 공감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제공하나요?

오늘은 뉴스와 편향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칼럼을 골랐어요. 지난 4월 중순 미국에서 80대 백인이 10대 흑인에게 총을 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후 잘 알려지지 않은 배경이 담겼습니다. 기사는 약 3분 분량이에요.

☑️ 미국 캔자스시티에 사는 80대 백인 남성 레스터는 주소를 착각해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누른 10대 흑인 남성에게 총을 두 발 쏴 중상을 입혔다.

☑️ 레스터의 손자는 그가 폭스뉴스에 빠져들면서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폭스뉴스는 무슬림, 이민자, 흑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 성향 채널이다.

☑️ 이제 폭스뉴스는 자신이 만든 괴물에 끌려다닌다. 다른 극우 채널에 시청자를 빼앗기자 대선 조작설을 보도했고, 결국 투표기 업체에 1조원을 배상하게 됐다.

폭스뉴스와 편집증적 세계관

2023. 05. 01. 정유진 국제부장

Unsplash(Rubaitul Azad)

대선 조작설을 퍼뜨린 폭스뉴스가 투표기 업체인 도미니언에 1조원이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기 불과 닷새 전이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부모님 심부름으로 동생을 데리러가던 16세 흑인 소년이 주소를 착각해 엉뚱한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가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인 84세 백인 남성 앤드루 레스터는 현관 밖에 낯선 흑인 소년이 서 있는 것을 보자마자 총을 두 발 쐈고, 그중 한 발이 유리를 뚫고 소년의 머리로 날아갔다. 소년은 중상을 입었지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레스터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왜 레스터는 집 밖에 낯선 이가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소년에게까지 다짜고짜 총을 쏜 것일까.

그는 폭스뉴스 중독자였다. 그의 손자는 현지 언론인 캔자스시티스타와 인터뷰하면서 예전에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았지만, 그가 폭스뉴스 같은 극우 케이블 채널을 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5~6년 정도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폭스뉴스 패널들이 아버지 없는 흑인 가정이 이 나라에 범죄가 존재하는 이유라면서 네 집을 지키려면 스스로 총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를 끊임없이 외쳐댔던 것이 떠오르자, ‘할아버지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폭스뉴스의 대선 조작설과 코로나19 음모론을 완전히 믿으면서 우익의 토끼굴로 더 깊이 빠져드셨어요. 24시간 내내 공포와 편집증의 뉴스 사이클 속에 사셨습니다.”

폭스뉴스는 1996년 첫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별 영향력 없는 여러 케이블 뉴스 채널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주의 노선으로 전환한 후 2000년대 초반에는 공화당 지지자 3분의 1 이상이 시청하는 채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현재 폭스뉴스의 프라임타임 평균 시청자 수는 220만명으로 MSNBC와 CNN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CNN, CBS, NBC, 뉴욕타임스 등 다양한 소스를 통해 뉴스를 접하지만, 상당수 공화당 지지자들은 지역 TV채널과 폭스뉴스 단 두 곳만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공포와 편집증의 뉴스 사이클”이라는 레스터 손자의 표현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뉴스를 24시간 내보내 시청자를 끌어모은 덕분이기도 하다. 테러에 대한 공포, 무슬림에 대한 혐오, 이민자에 대한 분노. 흑인 범죄자가 당신의 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동성애가 청교도정신 위에 세워진 미국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편집증.

그래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정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그는 폭스뉴스가 착실히 쌓아올린 편집증적 세계관을 가장 잘 구현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을 막는 것뿐 아니라 아예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테러 단체와 연관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무슬림뿐 아니라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폭스뉴스가 만든 세계관은 이제 거꾸로 폭스뉴스까지 위협하고 있다. 가디언은 도미니언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된 폭스뉴스 내부 e메일과 문자 등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폭스뉴스가 스스로 만든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폭스뉴스가 처음부터 대선 결과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폭스뉴스는 격전지였던 애리조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하고, 트럼프의 거짓 주장에 대한 팩트 체크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오히려 폭스뉴스에 화를 내면서 다른 극우 채널인 원아메리카뉴스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폭스뉴스의 편집증적 세계관에 중독된 사람들이 어떻게 선거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1987년까지만 해도 방송사들에 전파 사용을 허가하는 대가로 반드시 뉴스를 보도할 때 반대 견해를 소개하도록 하는 의무를 지웠다. 그러나 이 원칙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견에 따라 폐기됐다. 다양한 채널과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더 많은 시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어느 한 매체에 균형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뉴스 소비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을 찾아 채널을 바꾼다. 그리고 이를 조장해온 미디어는 다시 이를 바탕으로 생존전략을 짠다. 이것이 어디 미국만의 문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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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부터 "그거 아직도 안 봤어?"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게 들립니다. 유튜브와 OTT에 그렇게 수많은 채널이 있는데, 상대방이 본 걸 당연히 나도 봤을 거라고 넘겨짚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죠.

뉴스도 똑같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 뉴스를 아직도 몰라?"라는 말도 어색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대가 나와 같은 뉴스를 비슷한 시점에 접했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개인화된 서비스에 익숙한 채로 지내다가도 가끔 이런 뉴스를 보면 섬찟한 기분이 듭니다. 레스터가 정말 폭스뉴스 때문에 흑인에 대한 편향이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손자와 5~6년이나 연락이 끊겼고, 손자가 그 원인을 폭스뉴스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레스터의 '중독'이 꽤 심했던 건 사실 같습니다.

자신이 즐겨보는 매체의 편향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화된 매체가 보여주는 세계는 늘 한계가 뚜렷한데, 우리가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대중매체' 시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걸 아직도 몰라?"라고 묻곤 합니다. 내가 보는 것을 곧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불일치, 사실 뉴스레터를 보내드리는 저희가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제는 재미있게 본 OTT 프로그램을 어디서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나는 그게 이러저러해서 좋더라. 생각 있으면 한번 봐봐'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도 같은 방식으로 자꾸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편향을 비난하는 편향성

"인간은 서로 범한 편향을 나누고 교정하면서 공통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언론학자 이준웅 교수는 상대의 확증편향에 대해 화내거나 낮잡아 보지 말자며 이렇게 말합니다. 직업, 학력, 정치성향하고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편향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편향은 인간이 진화한 결과로 해석합니다.

AI는 어떻게 편향되나

편향으로 가득찬 세계의 정보를 취합해 작동하는 인공지능(AI)은 또 어떤 편향을 보일까요. AI 기술을 구조적으로 해부하다 보면, AI가 반복학습한 데이터의 편향 문제에 부딪칩니다. 안면인식기술이 인종차별적일 수 있다는 생각, 해보셨나요? 책 <AI 지도책>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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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의 이야기

📬 "이은애 재판관님 의견에는 에디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입법을 통해야 하는데.. 특히 법조계 계신분들이 저런 의견 많이 내시는 거 같거든요. 형벌 강화가 손쉬운 해결책이라는데 공감하면서도, 어려운 해결책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국 '민식이법은 위헌'이라는 문장만 남고 유야무야될까 걱정돼요." (스마일님)

📝 "지난 4월26일 <정말 '초라니'가 문제일까?>편에 남겨주신 의견이에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스마일님과 같은 지점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헌재는 우리의 운전 문화에서 실마리를 찾았어요. 보행자보다 차량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워낙 강하다보니, 도로를 아무리 S자로 꼬거나 방지턱을 숱하게 세워도, '항상 보행자를 주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고양되지는 않는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헌재는 민식이법의 입법 취지(형벌로 운전자의 보행자 주의 의무를 각성한다)를 옹호했습니다.

민식이법은 분명 각성 효과를 낸 것 같아요. 일부 운전자들의 '불만' 또한 어떻게 보면 스쿨존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형벌적 수단이 형벌적 수단에 앞서야 한다는 원칙만 고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스마일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 유야무야됐을 듯해요.

다만, 헌재는 2021년 11월 반복해서 음주운전을 한 사람을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강한 처벌이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면역과 무감각이 생긴다"고 했어요. 형벌을 강화해 생긴 각성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또한 법조계에서 대체로 인정하는 사실 같습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민식이법은 '우리 사회의 보행자 경시, 차량 중시 문화 때문에 취약한 어린이들 희생이 너무 크다'는 진단 아래 나온 예외적 처방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또, 민식이법이 만든 각성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면역이 나타나기 전에 비형벌적 수단, '어려운 해결책'도 하나씩 실현해 형벌적 수단의 약점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식이법으로 잠깐 시간을 번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