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팡팡 #쇤부르크 #톨스토이 CONTENTS
문광호 기자의 밑줄__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천의 선인>
조해람 기자의 밑줄__ | 팡팡 <우한일기>
유설희 기자의 밑줄__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윤희승 인턴기자의 밑줄__ | 레프 톨스토이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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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점선면팀입니다. 오늘(23일) 레터는 한 달에 한 번 인사드리는 '월간 밑줄'입니다. 어느새 이 코너를 기다린다는 분들도 계신데요. 이번 달에도 점선면팀 기자들이 각자의 책상과 침대맡에서 오래 머물다 온 문장을 골랐습니다. 강추위가 이어지는 요즘 독자님의 마음을 잠시라도 덥힐 수 있길 바라며, 월간 밑줄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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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테: 착하게 살라는 당신들의 말씀은 번개처럼 날 두 조각 냈습니다. 난 어떻게 할지 몰랐죠.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을 동시에 이롭게 할 수가 없었어요. (중략) 당신들의 세상은 분명 뭔가 잘못됐어요. 왜 악행이 상을 받고, 선행은 불행을 당해야 하죠?"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천의 선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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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런 쓰레기 같은 기사를 써놨냐."
과거 일했던 직장에서 폭격처럼 쏟아진 지적에, 제 입 밖으로 간신히 나온 말은 "죄송합니다"뿐이었습니다. 어떤 기사가 좋은 기사인지 기준을 몰랐으니 화를 낼 수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었던 거겠죠. 의기양양해진 그는 폭언을 더욱더 쏟아냈습니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내 쓸모란 뭘까' 하고요.
"비행에 관한 책은 다 읽었지만, '더 이상 비행사가 필요 없다'는 책의 한 페이지를 못 읽은 내가 제일 바보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사천의 선인> 속 등장인물 '양선'의 대사에서, 문득 잊고 있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비행사라는 자부심이 큰 양선은, 비행기를 몰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데요. 자신을 혐오하다 못해 타인의 '쓸모'까지 제멋대로 평가해버립니다.
그 희생양은 양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센테'입니다. 센테는 '사천(중국 쓰촨성)의 선한 사람' 이야기인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데요. 센테가 선행으로 신의 선물을 받자 양선은 다시 비행사가 되기 위해 그를 이용하려 듭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면서요.
사랑도 그저 수단에 불과했던 양선은 나중에 센테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으로 변모하는데요. 브레히트는 센테의 사랑이 그를 바꿨다는 뻔한 결말로 극을 이끌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의 모티브이자 뼈대인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차근차근 비틀며 '착한 사람이 어떻게 불경해지는가'를 그립니다.
"내 의붓어머니는 빈민가의 하수도에서 날 씻겼고, 그래서 난 매운 눈을 갖게 됐죠. 동정에는 고통스러웠고, 연민 앞에서 난 성난 늑대가 됐어요. 그리고 따뜻한 말들은 내 입을 나서면 재가 됐죠." 자신을 심판하려는 신들 앞에서 센테는 '착한 약자' 대신 '당당하지만 매정한' 자아를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따뜻한 언행이 무용해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가졌다는 겁니다.
센테의 외침은 현재도 유효합니다. 얼마 전 차별금지법을 취재했는데요. 실제 여론 분포와 달리 온라인상에서는 더 조직적이고 더 과격한 반대론자들이 큰소리를 냈습니다. 혐오와 차별처럼 신경질적으로 뱉어지는 말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지만, 상처받은 사람을 구제하자는 목소리는 늘 당위쯤으로 밀려나더라고요.
이런 현실에서 균형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사천의 선인>처럼 신이 그저 "넌 할 수 있어. 착한 일만 하면 모든 건 잘될 거야!"라고 하는 사회라면 약자는 세상을 설득할 자신의 언어를 갖추기 위해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제가 심한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좋은 기사란 뭘까'하고 혼자 머리를 싸맸던 것처럼요. 그러다 보면 결론은 투박해 불경하고 우악스럽고 불편을 끼치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야만 들리는 사회가 정상일까요?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도록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을 도입했던 브레히트는 <사천의 선인>의 끝에 배우의 입을 빌려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으론 이 연극이 어떻게 돼야 할까요? 사람들이 변해야 할까요? 아니면 세상이 변해야 할까요? 적절한 결말이 반드시 꼭 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신 참 재수 없다."
문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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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人不傳人).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可控可防).'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
- 팡팡 <우한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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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딱 이맘때였죠.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날(2020년 1월20일)이요. 전염성이 높았던 코로나19는 엄청난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더니 금방 전 세계를 전대미문의 혼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코로나19의 시작점이었던 중국 우한은 오죽했을까요. 지구에서 가장 먼저 팬데믹을 맞닥뜨린 우한은 극심한 혼돈과 정부 당국의 강압적 통제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통행 금지 조치로 거리는 텅 비었지만 어디서나 참혹한 아우성이 들끓었습니다. 그리고 그 봉쇄된 도시에 한 작가가 살았습니다.
체제 비판적 성향으로 당국의 눈엣가시였던 작가 팡팡은 예민한 눈으로 권력자들의 거짓말을 폭로합니다. 우한 전통시장에서 막 환자들이 발생하던 때, 양심적인 몇 의사들이 새로운 전염병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당국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거짓말로 혼돈을 덮기에 급급했죠.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한 의사는 당국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무능과 은폐가 계속된 결과 인구 1000만의 대도시 우한은 피와 눈물로 물들었습니다. 집에 갇힌 시민들은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체는 화물트럭에 실려 나갔습니다. 무능한 관료들은 사태를 축소하기에만 급급하고, 체제에 아부하는 작가들은 침 튀기며 정부 대응을 칭찬하기 바빴습니다. 팡팡은 그 모든 기괴한 풍경을 기록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올렸습니다. 그의 계정은 계속 차단되고 글은 지워졌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그의 글을 복사해뒀다가 릴레이처럼 다시 올렸습니다. <우한일기>는 그 글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팡팡은 인간의 나약함과 권력의 비겁함만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치기구를 만들어 얼마 되지 않는 생필품을 서로 나누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가는 사람들, 코로나19의 위험을 경고한 양심적인 의사의 사망을 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시민들도 팡팡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절망의 반대편에서 희망의 버팀목을 놓는 이름 없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록에 남겼습니다.
뉴스레터를 쓰면서 세상 곳곳의 비극을 접하다 보면 문득문득 <우한일기>가 생각납니다. 최근 사례는 이란이었습니다. 인터넷을 끊어 정보를 통제하고 총칼로 비판을 틀어막는 이란 정권의 모습에서, 코로나19가 퍼지는데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거짓말을 반복하던 중국 당국을 떠올립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멀게는 4·3에서 5·18에서, 가깝게는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사회적 참사 때마다 권력은 '아무 문제 없다'며 사태를 덮기 급급했습니다. 권력자들은 어쩜 그렇게 똑 닮았을까요.
참상과 비명을 등 뒤로 감추며 '아무 문제 없다'고 웃는 이들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제가 제 작은 일상에서 그런 비겁을 저지르는 일도 경계해야겠습니다. 그런 일을 경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제가 앞으로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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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자들은 언제나 도둑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나는 생트로페의 해변, 바다가 보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별장에서 사는 어느 부부를 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환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두 사람은 감옥살이하듯 산다. 집이 온통 값비싼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현관에는 자코메티의 조각품이 놓여 있고, 식당에는 르누아르의 그림이 걸려 있으며, 피카소의 그림들은 거실을 장식한다.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집 안에 항상 누군가가 있고, 보안 요원이 하루 24시간 집 주변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베리아에서 아름다운 말년을 보낼 생각으로 그 집을 마련한 부부는 결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을 나서지 못한다. 그리고 저녁에 황금 새장 안에 앉아서, 수염 더부룩한 경비원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려고 30분마다 크고 아름다운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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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500년 전부터 서서히 몰락해온 독일 귀족 가문의 후예이자, 불경기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일자리를 잃었던 언론인인데요. 그는 과소비를 하지 않고도 우아하게 사는 법을 전해 줍니다.
그는 일, 외식, 자동차, 쇼핑 등 여러 분야에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전수하는데요. 자동차를 살 땐 "자동차를 일상용품의 범주로 보고 건전하게 경멸하는 태도로 접근하라"고 조언하고, 쇼핑에 관해선 "사람이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죠.
특히 그는 부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물들에 많이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더 가난한 법"이라며 프랑스의 부유층 휴양지로 유명한 남프랑스 생트로페 해변가에 그림 같은 별장을 짓고 사는 이 부부를 예시로 드는데요. 예술품을 누가 훔쳐갈까봐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있어야 하는 부부의 상황은 아이러니하죠. 이런 까닭에 '돈의 포로'가 된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부러움이 아니라 동정심이라고 저자는 꼬집습니다.
그는 우리가 물건을 사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뇌 과학 실험으로 설명합니다. 두뇌 연구가 볼프람 슐츠의 실험에 따르면, 원숭이는 사과를 받기 직전 전등이 켜질 때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지만, 막상 사과를 받았을 때는 수치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해요. 실제적인 보답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인데, 우리가 물건을 막상 사도 행복해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막상 갖게 되어도 기분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진정 풍요롭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포기의 호사'입니다. 소비의 강요에서 해방되고 소유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면,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지 깨닫게 되고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웨이터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메뉴를 고를 수도 없는 고급 레스토랑 대신, 직접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마음도 편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삶을 보람 있게 해주는 예의, 지성, 정중함, 다정함 같은 가치들은 우리 수중의 돈이 줄어든다고 해서 결코 줄어들지 않고요. 물질적 풍요에 매몰되기 쉬운 자본주의 시대, 소비의 유혹에 맞서 자신을 지킬 힘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우아한 사람이 아닐까요?
유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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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부터 아주 이상한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막막한 의혹의 순간이, 삶이 멈춰버린 듯한 순간이 찾아왔고, 그럴 때면 당혹감을 느끼며 근심에 잠겼다. (중략) 언제나 똑같은 질문이 솟구쳤다. 무엇 때문에? 이제 앞으로는? (중략) 나는 그것이 일시적이고 가벼운 병이 아니라 아주 중한 병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계속 되풀이되는 질문에는 어찌됐든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질문에 답을 하려 했다."
- 레프 톨스토이 <참회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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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부터 일까지 연속되는 실패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밤, 저는 술집에서 콜라를 퍼마시고 있었습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이 고통을 잊고 싶은데,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는지라 그러지도 못하는 제 처지를 한탄하면서요. 그런 저를 두고 친구는 독한 위스키를 마시며 멋들어지게 말했습니다. "술, 인간, 신, 힘…다들 뭔가에 취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는 거야…." 친구의 명언이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명대사였음을 알게 된 건, 콜라를 들이켜 마셔도 취하지 않는 밤을 몇 달이나 보낸 후였습니다.
도무지 맨정신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날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고통이든, 사회적인 사건이든, 삶에 끊임없이 가해지는 압력들은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게 만듭니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숱한 회의와 대결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기어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 고통과 삶에는 목적이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것들이라, 우리는 직접 씹어 삼키기보다 대신 처리해줄 무언가를 찾게 되곤 합니다. 술, 인간, 권력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러나 과연 삶의 의혹들을 외면하고 어딘가에 취해 있는 것만이 버거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정답인 걸까요?
"삶에 취해 있는 동안에만 우리는 살 수 있다. 그러나 깨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기만임을, 그것도 아주 어리석은 기만일 뿐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레프 톨스토이의 <참회록>에는 삶의 질문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50대가 되기 직전의 톨스토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세계적인 작가로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삶'이라는 거대한 고민이 운석처럼 떨어집니다. 90권이 넘는 책을 쓰고,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같은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대문호 톨스토이마저도 실존적 위기를 피해갈 순 없었던 건데요. 톨스토이는 온갖 부와 명성을 뒤로 한 채 채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매진합니다.
톨스토이는 실존적 허무에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삶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단순하게 깨달았다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러나 나는 숲에서 길을 잃고 공포에 사로잡혀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더 깊숙한 데로 빠져들 뿐임을 알면서도 미친 듯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 같았다." 돈과 명예 등 그럴듯한 삶의 정답들에 순응하지도, 허무주의에 굴복하지도 않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 나선 겁니다.
예술과 철학을 거쳐 톨스토이가 도달한 답은 바로 종교입니다. 성현들의 형이상학적인 가르침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과 달리, 민중들의 신앙은 고통스러운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선하게 살아가도록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삶과 그 의미를 깨달으려면 먼저 스스로가 (중략) 참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참된 인류가 삶에 부여한 의미를 받아들이고 그런 삶을 살며 그 의미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종교라는 톨스토이의 결론보다, 그에 이르기까지의 부단한 내적 투쟁의 과정입니다. 모태 신앙인이었던 톨스토이가 종교를 거부하고 다시 신앙에 귀의하게 된 것은 무의미한 도돌이표가 아닙니다. 먼 길을 돌아갔을지라도, 누군가의 정답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냈으니까요.
세상의 지혜를 다 터득했을 것 같은 톨스토이에게도 삶이란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는 게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톨스토이도 겪은 실존적 방황을 저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비종교인인 제게 톨스토이의 결론이 완전히 와닿진 못하지만, 그의 풀이 과정에는 충분히 설득이 됩니다. 인간은 유약하기에 삶을 직시하기보단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잦습니다. 어딘가에 취해서 깨어나고 싶지 않거나, 남들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을 그대로 베끼고 싶지요. 그러나 삶이라는 고약한 문제는 치열하게 고민해서 작성한 풀이만이 자신만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톨스토이가 그랬듯 말이에요. 취하지 못해 괴로운 밤이 또다시 찾아오면, 그땐 콜라와 함께 톨스토이의 <참회록>이 제 곁을 지키고 있을 것 같습니다.
윤희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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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2일) 레터에서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를 다뤄봤는데요. 최근 사법부의 판결 중 가장 통쾌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줄줄이 예정된 12·3 불법계엄 주요 인물들에 대한 선고 역시 점선면이 꼼꼼하게 전달드리겠습니다. 또 최근 레터를 보시고 점선면을 향한 쓴소리에 반박하는 의견을 주신 분도 계셨는데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점선면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레터는 점선면 뉴스레터를 만드는 기자 4명이 인상깊게 읽은 책 구절을 소개하는 '월간 밑줄'로 전해드렸습니다. 독자님은 오늘의 밑줄 가운데 잔잔하게 남은 문장이 있었나요, 혹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문장은요? 좋았던 이유도, 선뜻 공감되지 않았던 지점도 괜찮습니다. 독자님의 의견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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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에 법이 응답해주다니 '이런 게 진짜 민주주의 사회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이 또 솜방망이 처벌이겠지' 했던 저를 부끄럽게 하는 명판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익명의 독자님)
💬어제 판결 나는 걸 보면서 속으로 환호했어요. 우리 사회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앞으로의 재판에서도 사법부가 정신 차리고 판결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특정 이슈에 대한 레터의 피드백에 종종 '중립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보이던데 그 어떤 입장도 없이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가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특히나 이런 뉴스레터에서는 더더욱요. 그런 면에서 점선면 응원합니다. 이 얘기를 언젠가 꼭 하고 싶었어요. (익명의 독자님)
💬돈에 충성하고 권력에 고개 숙이며 책임지는 것은 어리석다며 물러섰던 것이 대한민국 엘리트 1%에 있는 사람들의 행태였고, 거기에 올라서게 하려고 학부모들이 미친듯이 위장전입에, 부모찬스를 들이대며 부끄러움 모르고 조명 앞에 섰지요. 이제, 제대로 따져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국민이 됐으면 합니다. 총리도, 장관도, 대통령도, 고위직 엘리트. 모두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입은 특혜를 의식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인정하고! (익명의 독자님)
💬부동산 대책으로 세금 정책을 최후로 고려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실망, 또 실망뿐이다. 뚜렷한 공급책도 발표하지 못하면서 부동산 부자들이 세금 걱정없이 평생 갖고 누리라는 것 아닌가? 가진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 생각해준다고 더 이상 감읍하거나 속지 말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진 자 대열에 들어간 후 보이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일송님)
💬그린란드. 대전환의 시대라는 말을 아주 오랫동안 들었는데 이제 가시화돼 가는 듯하네요. 텅 빈 전철 문이 열리고 있는 느낌이라 누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신경전 또는 몸싸움이 이어질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 대체로 그렇듯 명예나 체면 같은 건 누구의 안중에도 없겠지요. 인생 한 50년 더 살아야 하는데 어떤 광경을 보게 될지 참 기대됩니다.
차별금지법 반응은 늘 그렇듯 늘 그런 반응인데요. 새로울 것 없는 얘기가 지속되는 가운데서 누군가는 이 교착 상태에서 나름 터를 잡은 모양새입니다. 모든 게 오래 걸릴 텐데, 이 모든 노력의 수혜를 다음 세대가 누린다는 게 누군가의 심중에는 불편한 듯합니다. 당장 저부터 그러니까요. 차별을 당하거나 하거나, 모두에게 필요한 건 내 세대는 이미 망했다는 인식이 아닐지. 사람이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선 언제나 좀 멀리 봐야 합니다. 당장 내가 사라진 세상이라도.
제법 세월이 지난 글인데,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 허문영 선생님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에 관해 이런 멋진 문장을 남겼어요. "현실이 이성을 살해하면 상상은 현실을 배반하기 시작한다. 상상은 현실을 포옹하지 않고 그를 자랑스럽게 혹은 강박적으로 지우려 한다." 이성을 지키세요! 모두 무난한 하루 보내시고요~ (익명의 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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